열네번째 이야기 진정한 남자
한번은 루까노르 백작이 빠뜨로니오에게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했다.
"내게 언제나 훌륭한 조언을 해주는 부하가 하나있는데 그가 친척아이를
시집보내려고 한다오. 그 때문에 이번엔 그가 내게 조언을 구해 왔소. 결혼하겠다고
나서는 수많은 구혼자들 중 어떤 사람을 선택해야 하느냐는 거요. 그 사람이 정확한
선택을 했으면 좋겠는데 뭐라 조언해 주어야 할지를 모르겠소. 당신은 그런 일에
대해 아는 게 많으니 어떻게 해야 하는지 좀 가르쳐 주시겠소?"
그 말을 듣고 빠뜨로니오는 백작에게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프로방스에 어떤 백작이 있었습니다. 매우 선량했던 그 사람은 명예롭고도 자기
지위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건장한 남자들을
휘하로 받아들여 훈련시킨 뒤 그들을 이끌고 울뜨라마르의 산따띠에라(역주:
성스러운 땅이라는 뜻)를 향해 출발했으나 그만 술탈의 포로가 되고 말았습니다.
비록 포로의 몸이었지만, 백작의 훌륭한 심성을 아게 되면서 술탄은 최대한 그의
편의를 봐주었고, 그를 존중해 주었습니다. 방대한 영토와 막강한 힘을 소유한
술탄은 여러 가지 일에 있어서 그에게 조언을 구하기도 했습니다. 백작의 조언이
너무나 훌륭한 것이었기에 술탄은 그를 깊이 믿게 되었지요. 그리하여 백작은 자기
영지에 있는 것과 다를 바 없는 대접을 받으며 지낼 수 있었습니다.
백작이 영지를 떠날 때 그에게는 어린 딸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 딸은 아버지가
포로로 있는 동안 혼기가 찬 처녀로 자라났습니다. 백작의 아내와 친척들은 포로로
있는 백작에게 여러 왕자들과 세도가의 자식들이 딸에게 청혼해온다는 전갈을
보냈습니다.
술탄이 그를 만나러 간 어느날, 백작은 술탄에게 그 이야기를 꺼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술탄이시여, 당신은 제게 크나큰 은혜를 베풀어주셨습니다. 저를 존중하고
믿어주시어 제 조언을 그토록 중히 여기시니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제가 감히 당신께 조언을 좀 부탁드려도 될는지요?”
백작의 말에 술탄은 매우 기뻐했습니다. 그는 자기가 아는 한도 내에서 기꺼이
조언을 해주겠다면서 심지어는 무엇이든 필요한 것이 있다면 도와주겠다고까지
했습니다.
백작은 자기 딸에게 청혼해온 집안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딸을 누구와 결혼시켜야
할지를 물었습니다.
이야기를 들은 술탄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백작님, 저는 따님에게 청혼해온 사람들에 대해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들의
가계가 어떤지, 세도가 어느 정도인지, 행실은 어떤지, 당신과는 어떤 관계이며,
서로 어떤 면에서 다른 사람보다 더 낫고 못한지도 모릅니다. 따라서 저의 조언이
적절한 것인지는 확신할 수 없습니다. 다만 저는 따님을 ‘남자'와 결혼시키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을 뿐입니다.”
백작은 술탄이 무슨 말을 하는지 즉각 알아듣고는 감사를 표했습니다. 그리고는
아내와 친척들에게 그 지방의 모든 귀족들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고 그들의 예법이
어떠하고, 관습은 어떠하며, 또 행실이 어떤지 확인해보되 그들의 부도, 세력도 보지
말고, 단지 결혼할 당사자가 어떤 사람인가 하는 것만을 보라는 내용의 전갈을
보냈습니다.
백작의 편지에 친척들과 아내는 매우 놀랐으나 곧 명령을 따랐습니다. 그리고
청혼해온 모든 사람들의 예법과 관습, 장단점 등을 서신을 통해 그에게 알렸습니다.
백작은 가족들이 써보낸 것을 읽은 후에 술탄에게도 보여주었습니다. 구혼자들은
겉으로 보기에 모두가 매우 훌륭한 것 같았으나 술탄은 그들에게서 여러 가지
결점들을 발견해냈습니다. 예의범절이 바르지 못하거나, 성격이 모났거나,
비사교적이거나 사람을 맞아들이는 예법을 모르거나,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거나,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것 등이 모든 청혼자들에게서 발견되는 인간적
결점들이었습니다. 그중에서 큰 세력은 갖지 못한 어느 부자의 아들이 그래도 가장
낫다고 판단 되었습니다. 그는 사윗감으로 적절한 자격을 가장 많이 갖추고 있었고,
여러 청혼자들 중에서 결점이 가장 적었습니다. 그리고 아무도 그에 대해 험담을
하는 것을 결코 들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술탄은 백작에게 딸을 그 사람과
결혼시키라고 했습니다. 더 세도가 잇고 신분이 높은 귀족도 많지만 그에 상당하는
결점을 가지고 있는 사람보다는 세력은 없지만 결점도 없는 사람과 결혼시키는 게
더 낫다는 것이었습니다. 남자를 평가할 때, 재산이 얼마나 된고 신분이 어떤가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사람의 됨됨이가 어떤가가 더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백작은 아내와 친척들에게 편지를 보내 딸을 술탄이 권한 사람과
결혼시키라고 명했습니다. 그들은 매우 놀랐지만 그 청년을 찾으러 사람을 보냈고,
그에게 백작의 명령을 전했습니다. 젊은이는 백작의 집안이 자기 집안보다 훨씬 더
지체높고, 부유하며, 세도도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자기의 청혼을
받아들이는 것은 분명 자신을 놀림감으로 만들기 위한거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백작가문의 사람들은 자기들 말이 사실이며 이 결혼이 성사되길 바란다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사실은, 청혼해온 사람들 중에 세도 높은 왕이나 귀족의 아들이 아닌
그 청년에게 딸을 시집 보내라고 술탄이 백작에게 권고했기 때문이고, 그것은
당신이 ‘남자’이기 때문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이 말에 청년은 그들이 진심으로
이야기하고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술탄이 자신의 됨됨이를 인정하여
‘남자’로서 자신을 택했으므로 자신이 응당 해야할 일을 하지 않는다면 자신은
남자도 아니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는 백작부인과 친척들에게 다른 말은 하지 않고, 자기에게 백작의 영지와
수입에 대한 권한을 모두 넘겨준다면 그들의 말을 믿겠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의논
끝에 합의를 보고 그가 요구한 모든 권한을 넘겨주었습니다. 막대한 부를 소유하게
된 그는 비밀리에 여러 척의 배를 무장시키고, 만반의 준비를 하고는 기일을 정해
결혼을 준비하라고 명령했습니다.
정해진 날짜가 되자 그는 화려하게 결혼식을 거행했습니다. 밤이 되어 아내가
기다리고 있는 집으로 간 청년은 자리에 들기 전에 은밀히 백작부인과 친척들을
불렀습니다. 지기보다 더 뛰어나고 부유한 사람들 중에서 백작이 자기를 선택한
것은 그들도 이미 알고 있듯이 딸을 ‘남자’와 결혼시키라는 술탄의 권유
때문이었다고 하면서, 술탄과 백작이 자기를 그토록 믿어주었는데 남자로서 응당 할
일을 하지 않는다면 자기는 남자도 아닌 셈이 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아내와
영지를 남겨둔 채 떠나겠다고 말했습니다.
말을 마치자마자 그는 말을 타고 출발했습니다. 그는 아르메니아로 가서 그곳의
말과 풍습을 배울 때까지 거기에 머물렀습니다. 거기서 그는 술탄이 사냥에 매우
뛰어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전투함을 항구마다 한 척씩 배치해 놓고
자기가 명령할 때까지 정박지에서 나오지 말라고 부하들에게 명령했습니다.
그리고는 훌륭한 사냥용 새와 사냥개를 여러 마리 구해 술탄의 궁으로 갔습니다.
그가 술탄의 궁에 당도하자, 크게 환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환영의 뜻으로
귀족에게 의당 그렇게 하듯 그의 손에 입맞추는 이도, 예를 갖추어 인사를 해오는
이도 없었습니다. 술탄은 그가 필요로 하는 것을 무엇이든 주라고 했으나, 젊은이는
그런 것 때문에 온 것이 아니었기에 술탄의 호의를 사양할 뿐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대신에 자기와 자기 부하들이 얼마간 술탄의 집에 머물면서 이것 저것
배울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에 덧붙여 술탄이 사냥의 명수라는 소문을
듣고 훌륭한 사냥용 매와 사냥개들을 가져왔으니 마음에 드는 것은 무엇이든 가져도
좋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자기는 나머지를 데리고 술탄을 따라 사냥을 가고, 지기
힘이 닿는 데까지 술탄을 위해 무슨 일이든 봉사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술탄은 매우
고마워하며 가장 좋아보이는 사냥용 매와 사냥개를 골랐습니다. 젊은 이는
술탄으로부터 어느 것 하나 확실한 약속을 얻어내거나 특혜 같은 것을 받은 바는
없었으나 꽤 오랜 기간을 술탄의 집에서 지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그들이 사냥을 나갔을 때 매를 따라 학을 쫓아가다가 전투함 한
척이 청년의 명령대로 배치되어 있는 항구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훌륭한 말을
탄 술탄과 백작의 사위는 동료들로부터 너무 멀어져서 그들이 있는 곳이 어디인지
몰랐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매들이 학을 잡아 물어뜯고 있는 곳에
당도했습니다. 술탄은 매들을 돕기 위해 신속히 말에서 내렸고, 백작의 사위는
술탄이 땅에 내려오자 전투함에 있던 부하들을 불렀습니다.
사냥감에만 열중해 있던 술탄은 자기가 전투함에서 내린 군사들에게 포위된 것을
알고 매우 놀랐습니다. 청년은 칼을 뽑아들어 그를 해치려 하는 뜻을 분명히
했습니다. 술탄은 그제서야 자기가 함정에 빠져든 것을 알고 가슴을 쳤으나 이미
때는 늦었습니다. 백작의 사위는 술탄에게 당신은 내가 주는 것을 모두 받았으나
자기는 술탄으로부터 아무것도 받지 않았으니 빚진 것도 없고, 또 당신의 신하도
아니므로 당신을 보호해야 할 의무도 없다고 하면서 불만은 없을 거라고 했습니다.
그는 술탄을 붙잡아 전투함에 태우고 나서, 자기는 ‘진정한 남자’이기 때문에
훨씬 나은 다른 사람들을 제쳐두고 술탄이 권해 선택된 백작의 사위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남자’라서 자기를 택했는데 이 일을 하지 않는다면 자기는
‘남자’도 아닌 게 되지 않겠느냐고 했습니다. 그는 술탄이 해준 충고가 훌륭한
것이고 진실 된 것이라는 것을 장인이 알 수 있도록 그리고 그런 충고를 해준 것에
대해 만족해 하시도록 장인을 넘겨달라고 했습니다.
이 말을 듣고 술탄은 충고의 의미를 정확히 알아맞춘 그를 치하했습니다. 그리고
기꺼이 장인을 넘겨줄 테니 자신을 믿어달라고 했습니다.
사위는 술탄의 말을 믿고 그를 배에서 내려주었고 부하들에게 사람들 눈에 뛰지
않을 때까지 부두에서 떨어져 있으라고 명령한 후 자기도 따라 내렸습니다.
술탄과 백작의 사위는 매들에게 먹이를 주기 시작했습니다. 그를 따라온 사람들
눈에 술탄은 매우 만족스러워 보였습니다. 자기에게 있었던 일에 대해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마을에 도착하자 곧 그들은 백작이 포로로 잡혀 있는 집으로 갔습니다. 술탄은
그를 보자 기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백작님, 제가 당신게 해드린 조언이 올바른 것임이 입증되었습니다. 여기 이
사람은 바로 당신을 구하러 온 당신의 사위입니다.”
술탄은 그의 사위가 자기를 포로로 잡게 된 경위를 설명해 주었고, 자기에게
보여주었던 신뢰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술탄과 백작 그리고 그를 아는 모든 사람들이 청년의 지혜와 노력과 진실함을
칭찬했습니다.
술탄은 백작과 그의 사위에게 많은 선물을 주었고, 갇혀지내는 동안의 노고를
달래기 위해 백작이 포로로 지낸 기간 동안 벌었을 수입의 두 배를 주어 그의
조국으로 돌려보냈습니다.
이 모두가 딸을 ‘남자’에게 시집보내라는 술탄의 훌륭한 충고 덕택이었습니다.
"그러니 백작님, 결혼상대를 고르는 데 있어서 무엇보다도 사람 됨됨이를
관심있게 봐야 한다고 충고하셔야 할 것입니다. 청혼자의 부와 귀족칭호는 아무
소용도 없는 것입니다. 사람이 훌륭하면 시간이 지나면서 명예가 드높아지고, 가계가
발전하며 재산은 늘어가기 마련입니다. 반대로 제아무리 귀족이고 부유하다 해도
사람이 옳지 못하면 모든 것을 순식간에 잃게 됩니다. 부모에게서 부와 지위를
물려받은 수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감당할 그릇이 못되어서 명예도 부도 모두 잃게
되는 경우가 아주 많습니다. 또 오로지 본인이 훌륭해서 재산뿐만 아니라 명예까지
높아지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들은 선조들로부터 물려받은 것이 많아 그렇게 된
사람들보다 더 칭송을 받고 존경을 받습니다. 잘되고 못되는 것은 그 사람됨에 달려
있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그 사람의 현재 상태와 조건이 어떻든 간에 말입니다.
따라서 첫번째로 살펴봐야 하는 것은 결혼상대의 예의범절과 행실이 어떠한가 하는
것입니다. 결혼하려는 여자는 남자가 얼마나 똑똑하고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사람 됨됨이가 어떤지를 첫번째로 보고 그런 후에 누가 더 높은 귀족인지, 재산이
더 많은지, 조건이 더 잘 갖춰졌는지, 자신에게 더 어울리는 사람인지를 본다면 그
결혼은 훨씬 더 현명한 결혼이 될 것입니다."
사람을 평가함에 있어 중요한 것은 그의 지위나 재산이 아니라 그의 됨됨이와
능력이다. 참된 인간은 작은 이익도 큰 것으로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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