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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여섯번째 이야기 최고의 기사는 누구인가

태양인1 2007. 8. 12. 15:45

열여섯번째 이야기 최고의 기사는 누구인가


  여느 때와 같이 루까노르 백작은 빠뜨로니오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렇게 말했다.
  "빠뜨로니오, 예전에 아주 막강한 세력을 가진 왕이 나의 적이었던 때가 있었소.
둘 사이의 대결은 하도 오랜 세월을 두고 계속되어 결국에는 화해를 해야겠다는
결론을 짓고 합의를 했다오. 그래서 지금은 친구가 되어 전쟁이 없어졌다오. 그러나
우리는 아직도 항상 서로를 의심하고 있소. 더군다나 그의 측근들이 그에게 하듯이
나의 벗들도 그가 우리 관계를 악화시킬 구실을 찾는 데 여념이 없다며 나를
불안하게 한다오. 그대는 내 모든 문제를 알고 있으니, 이런 때 어찌해야 하는지
충고해주기 바라오."
  빠뜨로니오는 말했다.
  "루까노르 백작님, 제게 요구하시는 조언은 여러모로 어렵습니다. 조언을 드리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백작님을 상대로 전쟁을 일으키고자 하는 자가 있다면 그는
전쟁 준비도 하고 있으리라는 것입니다. 또 당신을 모시고, 당신의 불행을 자신의
것처럼 아파하며 잘못을 깨우쳐주려고 하는 사람이라면 당신께서 어떤 일에 대비를
하시도록 하는 것도 당연하지요. 그리고 백작님께서 나쁜 일에 대비하시는 것을
막는 자가 있다면 그 사람은 당신의 생명을 귀중히 여기지 않는다는 뜻이며, 땅을
일구어 식량을 준비하고 요새를 튼튼히 하는 것에 반대하는 자는 당신의 재산이
보존되기를 바라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당신께서 많은 친구와 부하를 거느리며
그들을 위해 너그럽게 베푸는 것을 저지하는 자는 당신의 명예와 영토 수호를
원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 일들을 행하지 않으면 큰 위험에 처하게 되실 것이나,
한편으로는 그 일들을 시작하는 것만으로도 전쟁을 일으키는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이렇듯 어려운 일이지만 저의 조언을 바라시니 선하고 정직했던 한 기사의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군요."

  성스럽고 자비로운 페르난도 왕이 회교도들이 점령하고 있던 세비야를 포위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를 모시고 있던 많은 부하들 중에 당대 최고의 무사로 인정받고
있던 세 명의 기사가 있었습니다. 한 명은 로렌소수아레스 갈리나또였으며, 두번째는
가르시아 뻬레스데 바르가스였고 세번째는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군요. 하루는 이 세
기사가 서로 누가 최고의 무사인가 하는 문제를 두고 말다툼을 하고 있었습니다.
언쟁이 끝날 것 같지 않자 그들은 무장을 하고 적이 점령하고 있는 세비야의
성문까지 가기로 하였습니다.
  다음날 세 기사는 무장을 하고 그 마을로 갔습니다. 성벽과 망루 위에서 정찰을
하고 있던 회교도들은 그 세 사람이 오는 것을 보고는 외교서신을 전하는
사자일것이라고 판단하고 아무도 저지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해서 세 기사는 성
밖의 담을 지나 성문까지 갈 수 있었습니다. 기사들은 창끝으로 문을 여러 번
두드린 후 말을 돌려 다시 진영으로 돌아가기 시작했지요.
  이들이 서신을 가져온 것이 아니었음을 깨달은 회교도들은 노하여 기사들을 쫓기
시작했습니다. 성문을 열고 기병 천오백 명과 보병 이만 명 정도가 뒤따르기
시작했을 때 세 기사는 이미 멀리 가고 있었습니다. 그들을 따르는 회교도들이 점점
가까워지는 것을 본 기사들은 말을 돌리고 기다렸습니다. 적이 다가오자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 기사가 먼저 나서서 싸웠습니다. 로렌소수아레스와 가르시아
뻬레스는 움직이지 않았지요. 그러나 적이 더 가까이 오자 가르시아 뻬레스 데
바르가스가 싸우기 시작했고 로렌소 수아레스는 혼자 계속 구경을 했습니다. 그러나
곧 회교도들이 그를 에워싸고 공격을 하자 그도 용감하게 싸우기 시작했지요.
  왕의 군사들은 이 세 기사가 적에게 포위된 것을 보고는 즉시 지원하러
달려갔습니다. 많이 다치고 백적간두의 위험한 상황에 처해 있었지만 다행히도 이
세 기사는 목숨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기독교인들과 회교도들의 결투는 너무
치열했기에 페르난도 왕도 몸소 참가해야 할 정도였습니다. 승리는 기독교인들에게
돌아갔으나 진영으로 돌아오자 왕은 목숨을 소중히 여기지 않고 무모한 짓을 벌인
세 기사를 체포하라고 명령하였습니다. 그러나 모든 부하들이 세 기사를 용서해
달라고 빌자 왕은 그렇게 했지요.
  후에 왕은 목숨을 건 그 모험의 발단이 세 기사 중 누가 최고인가를 가리지
못하여 생긴 일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휘하의 모든 훌륭한 전사들을
불러모아 놓고는 세 기사 중 누가 더 훌륭했는가를 말하라고 했습니다. 모두 모이자
다양한 의견이 나왔습니다. 혹자는 처음 혼자 싸움을 시작한 기사가 가장
용감하다고 했고, 다른 사람들은 두번재가, 또 다른 이들은 세번째가 가장
뛰어났다고 했지요. 모든 의견의 근거와 이유가 너무도 논리정연하여 틀린 사람이
하나도 없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격론 끝에 다음과 같은 합의에 도달했습니다.
  “회교도인들이 수가 많기는 하여도 세 기사들의 용기와 노력으로 승리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면 첫번재 기사가 가장 훌륭했을 것이다. 하지만 적이 너무 많아 도저히
승리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이기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싸움을 시작했다는 것은
승리를 위해 싸운 것이 아니라 도망가는 수치스러움을 당할 수 없어 두려움을 느낄
겨를도 없이 용기를 가지고 싸움을 시작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한동안 두려움을
견디면서 적이 더 가까이 다가와 공격을 할 때까지 싸움을 시작하지 않은 두번재
기사도 나름대로 훌륭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가장 오랫동안 두려움을 견디고
회교도들의 공격을 직접 받고서야 싸움을 시작한 로렌소 수아레스 갈리나또가 세
기사 중 의심의 여지 없이 가장 뛰어나다.”

  "루까노르 백작님, 당신께서는 불안과 공포가 어떻게 다른 것인지 잘 알고
계십니다. 또한 한번 시작하면 쉽게 끝나지 않는 전쟁이 있다는 것도 아시지요.
그러나 불안하실수록 그만큼 더욱 현명하게 대처하실 수 있을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일에 대비하시기 때문에 그 누구도 갑자기 당신에게 화를 입히지는 못할 것입니다.
제가 충고하건대 절대 마음 내키는 대로 하지 마시고 급작스럽게 큰 화를 입지는
않으실 것이니 상대가 먼저 공격하기를 기다리십시오. 그렇게 하시면 사람들이
당신을 불안하게 만든 것이 근거없는 일이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당신을
안절부절 못하게 만드는 자들은 뭔가 일을 만들어야 직성이 풀리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측근이나 상대의 친구들도 전쟁을 원하는지 평화를 원하는지
스스로 잘 모르고 있습니다. 그들은 전쟁시에는 쓸모 없으며 온전한 평화를 즐길
줄도 모릅니다. 그들은 죄짓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소란을 피워 그 틈을 타
축재나 하려고 하며, 당신을 심란하게 만들어놓고는 재산을 갉아먹으려고 할
뿐입니다. 따라서 그들이 당신께 해가 되는 일을 하더라도 그들을 정확히
파악하시는 한 당신께서는 안전합니다. 당신은 모든 일에서 소신껏 행동한다는 것을
만인이 알게 될 것 이니 말입니다. 그리고 백작님께서 부당한 행위를 하지
않으신다면 아무도 당신을 공격하지 않을 것이 확실합니다. 백작님께 해가 되는
일을 하면서까지 못된 자들을 기쁘게 해주는 일은 하지 마십시오. 그러면 평화를
누리실 것이며 착한 이들에게 선을 베풀 수 있을 것입니다."

 

 

 타인의 불평을 받아주느라 해를 입지 말라. 고통을 참을 줄 아는 자만이
승자이니.